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무 덴노 (문단 편집) == [[백제]]와의 관계 == '''간무 덴노는 여러 가지로 백제와 관련이 있다'''. 일제 시기의 일본 언어학자인 가나자와 쇼사부로(金澤廣三郞)가 >'''"간무는 백제인이다."''' 라고 말한 적이 있고, [[아키히토]] 덴노가 [[2001년]] [[12월 23일]], 자신의 만 68세 생일을 맞이한 기자회견에서 《[[속일본기]]》의 기록을 들며 간무 덴노의 생모 타카노노 니이가사가 백제 [[무령왕]]의 자손[* [[무령왕]]의 아들로 왜국에 온 사아군([[순타태자]])의 후손이었다.]이라고 기록된 사실에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언급했다. 사실 유명 일본사 참고서에서도 간무 덴노가 도래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문구를 넣고 있다. 교토에는 간무 덴노의 어머니인 백제계 여인과 그 조상들을 섬기는 신사가 내려오고 있고, 이곳에는 백제 [[무령왕]]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. 《[[삼국사기]]》를 비롯한 한국 측 기록에는 백제 [[무령왕]]이 아들을 일본에 보냈다는 내용이 없는데, 무령왕 아들의 후손이 사실이라면 기록이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. 또한 간무 덴노 자신이 >'''"구다라노고니키시(百濟王, 백제왕) 일족은 짐의 외척이다.(百濟王等者朕之外戚也)"''' 라는 발언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. 간무 덴노는 황후 소생이 아니었고, 일본의 전통적인 지배 계층 출신도 아니었다. 그때문에 스스로의 황권을 강화하기 위한 왕권신수설로서 백제와 [[고구려]]의 신화까지 역사에 기록해 스스로 '하늘의 자손'이라고 주장했다. >황태후의 성은 화씨(和氏)이고, 이름은 신립(新笠)이다. 황태후의 선조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[[순타태자]]다. 황후는 용모가 덕스럽고 정숙하여 일찍이 명성을 드러냈다. 코닌(光仁) 천황이 아직 즉위하지 않았을 때 혼인하여 맞아들였다. … 백제의 먼 조상인 [[동명성왕|도모왕(都慕王)]]이라는 사람은 [[하백]](河伯)의 딸이 태양의 정기에 감응해서 태어난 사람인데[* 백제 시조 [[온조왕]]의 아버지는 주몽이라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.] 황태후는 곧 그 [[http://news.donga.com/3/all/20150625/72099968/1|후손이다]]. >---- >출처: 《[[속일본기]]》 즉, 간무 덴노의 입지는 외국의 신화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약했다는 뜻이 되며, [[후지와라]] 씨족의 권세 강화와 [[교토시|헤이안]] 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. 한편 당시 수백 년 전에 멸망한 고구려와 백제의 신화가 당대 일본에도 알려져 있었으며, 해당 신화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보여준다. >도래인 출신의 마미치는 같은 '''도래인의 피를 이은 간무 덴노'''를 옹호했으나, 덴노는 오쓰구를 지지하여, 2대 사업을 중지했다. >---- >출처: 《理解しやすい日本史B》 794년 간무 덴노가 헤이안쿄로 천도한 이후, 수도 조영사업 및 [[에미시]] 정벌 건으로 백성이 힘들어한다며 이를 반대하는 후지와라노 오쓰구(藤原緒嗣)와 찬성하는 스가노노 마미치(菅野真道) 사이에 이른바 '''덕정상론'''(徳政相論)이 일었다. 이 과정에서 관련 기록이 존재한다. >'옛날 일본은 [[삼한]](三韓)과 동종(同種, 같은 동족)의 나라였다.’고 적힌 책이 전해내려 왔는데, 이를 8세기 간무 덴노의 어대에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. >---- >《신황정통기》(神皇正統記)[* 일본의 3대 사론서 중 하나로 명장 [[키타바타케 아키이에]]의 아버지인 키타바타케 치카후사가 14세기에 집필했다.] 고고학적으로 일본에 청동기와 철기 문명을 전파한 [[야요이인]]들이 한반도 남부에서 도래했다는 것이 정설인데, 야요이인들의 기원인 일대와 삼한 일대가 같다는 의미로 추정된다. 물론 이웃 동네인 부여와 읍루(말갈 전신)의 차이처럼 그 시절에도 언어와 풍습이 달랐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삼한의 일부 지역에서 비슷한 문화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 남부에서 삼한과 함께 나타난 민족이 일본으로 도래하고, [[반도 일본어설|남은 민족]]은 삼한과 신라, 백제, 가야의 성립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. 책의 성격상 천황 가문의 해외 도래설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간무 덴노가 백제와 연관되어 있으면서 일본 최초의 [[율령제]] 시대이자 일본의 이미지가 정립된 [[헤이안 시대]]를 연 점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. 실제로 이 시기부터 일본은 중국 및 한반도의 영향이 대폭 축소되고, [[견당사]]가 중단되어 자국 중심적이며 독특한 '''국풍 문화'''가 점차 발달하게 되었다. 다만 중국과는 송대까지 비공식적인 교류가 어느 정도 이어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